조말 작가의 작업은 두 가지 면에서 동시대와 동세대 작가들과 큰 차별점을 갖는다. 첫째, 한국 역사의 자취에서 작업의 모티브를 얻는다는 점이다. 둘째는 텍스트와 시각예술이 상호 호환적으로 서로의 경계를 실험하는 방식을 보인다는 점이다. 여기서 작가의 연구자적인 태도와 지적인 소양이 엿보이며 큰 호감으로 다가온다. 이 글에서는 위에 언급한 두 가지의 특성이 어떻게 작업으로 구체화되었는지, 그리고 조말 작가만의 개성과 작품의 덕목이 무엇인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어보고자 한다.
< 하얀 광기 >(2021)은 조말 작가가 역사적 사건에서 작업을 채취하는 사례 중에서 가장 먼저 언급될 만하다. 복합매체를 활용하여 단두대를 만든 이 작품은 형상은 다소 일차원적이나, 작품에 부여한 의미들로 해석의 여지를 갖는다. 이 작업은 1866년부터 1871년까지 조선 조정에서 천주교 신자에게 가해졌던 박해 사건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절두산은 서울 마포구 합정동 한강가에 있는 산봉우리로 뜻밖에 서울 도심 속에 존재하는 장소이다. 약 200년 전 같은 장소에서 발생했던 끔찍한 학살 행위는 작가적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이르렀다.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종교적인 신념. 그것은 작가의 눈에 ‘혁명’으로 비추어진다. 사실, 현대예술 또한 종교적인 믿음과 매우 흡사한 부분이 있다. 그것은 숭고하고, 이상적이며, 희생을 담보로 한다. 또한 그것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사이의 뚜렷한 경계를 짓고, 그 경계는 때로 첨예한 갈등이 되기도 한다. 외부자들에게 그것(종교/예술)은 사이비이고, 내부자들에게 그것은 때로 삶의 전부, 혹은 그 이상이다.
단두대의 칼날을 자세히 살펴보면, 앞서 언급한 조말 작가만의 ‘텍스트적 디테일’을 엿볼 수 있다. 종이와 텍스트의 단면으로 켜켜이 쌓아 올린 칼날은 사료들로 이루어져 있어, 단순히 병인박해의 모티브를 차용하는 데 나아가 작가가 연구적인 태도로 접근한 흔적을 상징하기도 한다. 작가는 시각예술 작업과는 독자적으로 텍스트를 생산하는 활동 역시 꾸준히 지속하고 있는데, 문예무크지 「히스테리언」 4호 “머리가 없는 몸과 백 개의 머리를 가진 여인들”(2021)에 기고한 “사려 깊은 조말”은 < 하얀 광기 >의 바탕이 되는 픽션이다. 이 글은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삽입되어 있는 액자 구조를 띠며, 병인박해 사건을 배경으로 가상의 인물이 등장하는 형식 또한 취하고 있다.
이렇게 다분히 복합적이고 난해하기까지 한 텍스트에서 가장 주목하고 싶은 것은 해당 사건과 인물에 대해 취하는 작가의 온도 – 연민 –이다. 현대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주목을 받는 현상들은 으레 화려하고 반짝이며 실리적인 관점에서 도움이 되는 것들이다. 이를테면, ‘부와 명예’ 등이 그러하다. 반면 예술가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대상들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비평가로서, 나는 예술가들의 눈길이 머무는 ‘소외된 것들’에 흥미를 가져왔다. 즉, 21세기 젊은 작가가 1866년 천주교 순교자들에게 가지는 연민의 감정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것은 혹시, “나와 같다” 는 동일시 관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시각예술에서 ‘텍스트’를 모티브로 삼는 작업들은 존재해왔지만, 어디까지나 마이너에 머물러 있고, 특히 국내에서는 이렇다 할 텍스트 시각 작업을 본 기억은 거의 없다. (조말 작가와의 인터뷰 중, ‘박이소’의 작업에서 무릎을 치긴 했다.) 문학적 상상력, 텍스트 자체의 시각적 조형성, 혹은 텍스트가 실제 시각 예술 작품이나 설치로 이어지는 ‘상호 텍스트성’을 시각 예술로 구현한 케이스도 드물거니와(보통은 텍스트를 차용하거나 디자인적인 요소로 활용하는, 표면에 머무는 사례들에 그치고 만다), 텍스트를 차용함에 있어 뚜렷한 특징이나 보편타당한 이유, 혹은 작가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은 과업임에는 분명하다.
< 이야기 박스 : 그 여름날의 이야기 >(2016)의 경우는 텍스트에 대한 조말 작가의 심층적인 접근과 시각화되기까지의 고민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을 다루고 있다. 알다시피, 이 사건은 6.25 전쟁 초반 충청도에 위치한 노근리라는 마을 단위의 장소에서 민간인이 미군에 의해 학살당한 사례로, 광기 외에는 설명할 수 없는 대량 학살로 비극적인 울림을 자아내는 사건이다. 작가는 이 사건을 연구하던 중, 노근리의 한 터널에서 집단 학살 사례를 접하게 되었고, 당시의 상황을 시각화하되 텍스트를 극적인 요소로 활용하였다. 터널 모양의 ‘이야기 박스’ 바닥에는 유골을 상징하는 찌그러진 탁구공이 나뒹군다. 그 위에 드리워진 흰 삼베 천은 추모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위의 이야기 박스에는 여러 텍스트들이 자막처럼 전시되는데, “콰쾅”, “콰콰콰콰”, “악!”처럼 의성어와 함께 “갑자기 미군은 경고라도 하듯 호각을 불어 댔다”, “우리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양민이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죽이는 것이오?” 등 소설적인 요소들의 텍스트가 포함되어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조말 작가만의 텍스트적인 감각과 그것을 구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드러나는데, 그것은 실제 역사적인 사건과 공간을 바탕으로 텍스트가 형성하는 상상력, 그리고 그것을 작품과 설치라는 시각 예술의 영역으로 치환했을 때의 동질하게 감각할 수 있는 장치들에 대한 젊은 작가가 고민한 흔적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새로운 젊은 작가는 매해 탄생하고 이탈한다. 이런 사이클을 반복하며 미술계는 새로운 중견 작가를 맞이하고, 세대를 교체한다. 이 과정을 숱하게 지켜본 입장에서 젊은 작가들에게 무기가 되는 ‘차별점’,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보이는 그 속의 ‘진정성’을 눈여겨 보게 된다. 조말 작가는 우리의 역사적 비극을 통해 모티브를 얻고 그것에 대해 연구하며, 또한 텍스트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그만의 조형 언어를 완성하고자 한다. 앞으로 더 뾰족하게 다듬어 질 텍스트 작업에 특히 기대가 큰 바이다.
2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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